짧은 생각, 그리고2012.05.27 03:06











집 떠나면 개고생이다. 준비기간 5일의 대책 없이 떠난 인도 여행길. 40루피가 천원, 빠하르간지가 내가 아는 인도의 전부. 시작부터 쉽지가 않다. 25년 인생 가장 임팩트 있는 설사를 만나기도 하고, 뜬금없는 근육통에 쓰러지기도, 두통에 정신을 잃기도 하며 피골이 상접한 지칠 대로 지친 몸을 이끌고 도착한 바라나시. 영적이 힘이 넘친다는 이곳에 도착하자 거짓말처럼 설사가 멈췄다. 삼 일 만에 밥을 먹었다. 몸을 추스를 생각으로 숙소도 비교적 깔끔한 곳으로 잡았다. 몸이 회복될 때까지 평소보다 더 느긋하게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며칠을 보내다 밤에 겐지스 강 보며 홀짝이는 따듯한 레몬티가 얼마나 좋던지 강 주변 한 가트에 자주 찾는 레몬티 가게가 생겼다. 단국대에서 1년간 국어공부를 했다는 '산재'. 산재를 통해 Pandi Gatt 사람들과 인연이 닿게 된다. 아침 일찍 나가면 환한 얼굴로 배드민턴 라켓을 건네는 큰 산재, 크리캣을 가르쳐주던 띵구와 일당. 땀 한 바가지로 하루를 시작한다. 바라나시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기도, 방에서 실컷 잠을 자기도, 맛있는 집을 찾아다니다가도 오후 5시가 되면 가트에서 열리는 자그마한 크리캣 경기에 참가했다. 짧게 머물 줄 알았던 바라나시. 의식하지 못한 사이 한 달이 다 되어갔고 군입대를 앞두고 시간이 여유롭지 않은 현실에 떠날 채비를 해야 했다. 고마운 친구에게 선물을 해주고 싶어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말해달라고 했더니 레몬티 가게에 페인트로 한국어를 써달라는 산재. 얕지만 여행 전 그림도 배웠었던 터라 '글씨만 가지고 되겠어?'라며 일을 벌였다. 혼자 멍하니 앉아 펼친 노트에 이렇게 저렇게 끄적여 보지만 이건 뭐. 친구의 실망하는 얼굴이 선하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그림에 재주가 있는 사람을 찾아다녔다. 바라나시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알게 된 여행자들의 도움으로 디자인을 전공한 남매가 있다는 소식과 숙소 위치를 알아냈다. 두꺼운 얼굴을 들이밀고는 남매에게 지난 일들을 이야기하고 1.5L 콜라 하나로(무보수) 벽화를 의뢰했다. 심심해서 다른 곳으로 떠나려던 참에 잘 되었다며 흔쾌히 승낙한 남매. 박 남매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레몬티 가게에서 아이디어 구상하고, 밤새워 도안을 완성했다. 다음날 완성된 몇 개의 도안을 들고 산재를 찾아갔다. 도안을 본 산재는 입이 귀에 걸렸고 벽화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혼자 어떻게든 해보려고 벽을 하얗게 칠 해뒀던 곳부터 벽화는 채워졌다. 그래피티 스타일의 첫 번째 벽화. 벽화 경험은 사막마을 자이살메르에서도 있었지만, 함께 참여해 본 것은 처음. 설레는 마음 감출 길이 없다. 레몬티 가게는 여행자들이 모여 놀 수 있는, 즐길 수 있는 공간이란 의미의 '노리터'로 이름 지어줬다. 레몬티를 홀짝이며 벽화에 열중하다 보면 어느새 수많은 구경꾼이 몰려들었다. 하나의 퍼포먼스로 봐도 부족한 것이 없던 벽화. 음악가, 사진가, 화가 등의 구경꾼은 벽화 그리는 우리 옆에 자리해 음악을 하기도, 공연하기도 했다. 어느샌가 우리가 지어준 이름처럼 놀이터가 되어있는 노리터를 보면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작업하며 현지인들, 여행자들과 교감하고, 밤이 되면 산재네 보트에 누워 갠지스 강 위로 펼쳐진 밤하늘 그림에 취하길 하루, 이틀. 이제는 정말 떠나야 할 때가 왔다. 떠나기 한 시간 전까지도 마지막 벽화는 'ing'. 박 남매는 기차 시간이, 나는 버스 시간이 압박해왔다. 작업이 마무리될 즈음에 산재 동생 띵구가 왔다. '뭐야... Don't go.'. 우리가 떠나는지 모르던 띵구는 어색한 한국말을 섞어 말했다. 쭉 잡았던 눈물을 놓쳤다. 체면 차릴 게 뭐 있다고 서둘러 눈물을 훔쳤다. 시간이 됐다. Pandi Gatt 식구들, 노리터. 멀어지는 바라나시. 완벽주의자보다는 경험주의자가 되자며 오늘도 즐거운 이야기보따리를 가방에 담은 채 여행은 계속된다.











-내 여행은 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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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허벅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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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 진한 칼라..간만에 다시 보는듯하네요...ㅎㅎ
    여행....여행...아....

    2012.05.30 11:2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해우기님만이 다 죽은 블로그를 찾아주시네요.^^
      이때처럼 다시 여행할 날이 오겠죠~~?

      2012.05.30 22:27 신고 [ ADDR : EDIT/ DEL ]
  2. 제 블로그에 오셔서 댓글을 달아주신 걸 이제야 봤네요..ㅎ 티스토리앱엔 알람기능이 없어서 ㅠ 그리고 누가 올 거라곤 생각도 못했고요. 노리터 페인트칠을 하신 분을 이렇게 만나게 되네요. 너무 신기하고 반가워요 :)

    2012.10.25 02:1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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