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생각, 그리고2010.11.02 06:00






 2008년 8월 어학연수를 위해 미국에 간일을 계기로 외국여행의 첫발을 내디뎠다. 외국여행에 대한 두려움과 설렘으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출국일이 다가왔고, 처음으로 혼자서 지내는 외국 생활이 시작될 것이다. 알파벳과 be 동사도 모르던 시절, 항상 가까이서 볼 수 있었던 친구나 가족들을 볼 수 없고, 마음대로 전화도 할 수 없는 상황. 이 고립된 상황이 나를 변화시켰다. 




 캔자스에서 변화는 조용히 다가왔다. 혼자 지내는 만큼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평소 가볍게 지나치는 것들을 조금 더 깊게 보게 되었고,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었다. 고국과는 모든 게 달랐던 미국, 생각의 틀을 완전히 깨버리는 시간이었다. 미국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니 원래 낙천적인 성격에 더욱 자유분방해졌다.




 11월 추수감사절이 있는 달이다. 이 기간에 많은 친구는 고향으로 돌아가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온다. 딱히 갈 곳이 없어 쉬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즈음에 LA에 사는, 어렸을 적 소위 '불알친구'였던 친구에게서 보고 싶다는 e메일이 왔다. LA와 내가 사는 캔자스는 비행기로 다섯 시간 거리로 꽤 먼 거리였다. 가고 싶었다. 영어도 할 줄 모르고 처음 미국에 도착해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길을 잃고 비행기를 놓친 때를 생각하니 답장을 쉽게 할 수 없었다. 친구는 보고 싶은데 용기가 부족했다. 




추수감사절을 일주일 남기고 덜컥 표를 사버렸다. 그때의 떨림이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LA 공항에 도착했다. 그래도 석 달을 공부 했다고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되었다. 말이 들리고 또 된다. 신기했다. 말이 통하니 두려움은 곧 재미로 변했고, 친구를 만나기 위해 떠났던 일주일간의 캘리포니아 여행은 나를 변화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때부터 여행을 꿈꾸며 지냈던 것 같다. 




여행에서 다시 캔자스에 돌아오니 좀 더 영어를 잘 하고 싶다는 생각, 빨리 다른 곳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등으로 하루하루가 의욕이 넘쳤다. 매일 손에 들고 다니던 영어 사전도 더는 들고 다니지 않았다.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겨울 방학이 되었고 여행을 가려고 했지만,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못했다. 겨울 방학때 가려던 여행을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듬해 5월, 두 학기가 끝나고 본과 편입과 귀국의 기로에서 결국 귀국을 선택했다 귀국길은 한 달간의 여행 일정으로 꾸며졌다. 뉴욕과 LA에서 보름 씩의 일정으로 길을 떠났다.




 뉴욕 여행. 한국에서 매일 같이 만나다 시피 한 친구 한 녀석이 뉴저지에 1년간 머물 예정이니 들어가기 전에 얼굴이나 보자고 했다. 미국에서 보니 더 반가웠다. 친구 집에 여장을 풀고 친구가 학원을 가는 새벽에 같이 나가 친구의 큰아버지 가게 일을 도와드렸다. 그 대가로 받은 샌드위치 하나를 반으로 나누어 하나는 아침에, 나머지 반개는 여행 중 점심으로 먹었다. 저녁은 친구의 학원수업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친구와 집에 돌아가 해결했다. 교통수단은 지하철을 이용했고 그중에서 제일 싼 보름짜리 표를 사용했다. 뉴욕 곳곳을 혼자 누볐다. 보가닉 가든의 벚꽃 향연은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누가 미국에 가게 된다면 뉴욕은 가지 말라고 했던가. 뉴욕은 물가는 비쌌지만, 가장 미국적인 미국을 볼 수 있었다.




 보름간 신세를 진 친구 가족들에게 인사를 드리고 LA로 떠났다. 두 번째 찾은 LA. 바닷가에서 천연 수족관을 발견했다. 썰물에 바닷물이 빠지면서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물고기들이 웅덩이에 가득했다. 크고 작은 웅덩이가 있었다. 각 수조엔 다른 생물들로 가득하고 아름다웠다. 보름간 머물면서 또 다른 천연 수족관을 찾아다녔다. 하루는 밀물이 들어오는 해 질 녘에 이동하는 고래떼를 보았다. 그렇게 많은 고래를 본 것은 처음이었다. 마치 턱관절이 빠진 듯 입을 벌린 채 한참을 지켜보다가 물에 돌아가는 길이 막혀 난감한 적도 있었다.




 꿈같은 한 달간의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오니 다른 나라에 온 것 같았다. 모든 게 그대로였지만 무언가 달라 보였다. 누군가가 말한, 어디선가 읽은 듯한 숲 밖으로 나가야 숲을 볼 수 있다는 말이 가슴에 와 닿은 순간이다.




 나는 또 다른 숲을 보기 위해서 준비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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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허벅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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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저랑 많이 비슷한 것 같아요. 저도 처음 여행을 혼자서 abc도 모르는 중에 나가버렸는데... 많이 두려웠지만... 돌아보면 확실히 님 말처럼 숲밖으로 나가야 숲을 보게 되는 듯~^^

    2010.11.02 10:4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3. 와~~사진 넘 멋져요~~~^^

    2010.11.02 10:5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카테고리에 FOROS에 가시면 뉴욕 사진이 몇 잘 더 있습니다.
      부족한 사진이지만 칭찬해주셔서 고맙습니다.^^

      2010.11.02 11:04 신고 [ ADDR : EDIT/ DEL ]
  4. 참 좋은말씀, 가슴에 새겨둡니다...
    늘 두려움이 있지만, 도전하고 성취하는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지네요.
    오늘도 화이팅입니다.^^

    2010.11.02 11:0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스카이파크님의 도전하는 모습은 늘처럼 자극이 됩니다.^^
      좋은 피드백을 나눌 수 있는 이웃님이 계셔 힘이납니다!

      2010.11.02 11:27 신고 [ ADDR : EDIT/ DEL ]
  5. 역시 참 멋진분이시군요!

    2010.11.02 11:1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6. 제목이 멋집니다.
    저도 동감하는 부분이구요^^

    2010.11.02 11:2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7. 비밀댓글입니다

    2010.11.02 12:28 [ ADDR : EDIT/ DEL : REPLY ]
    • 쉼도 중요한 것 같습니다.^^
      형님의 경험엔 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그럽니다.: )

      2010.11.02 14:24 신고 [ ADDR : EDIT/ DEL ]
  8. 좀 처럼 숲밖으로 나가기가 쉽지 않네요

    2010.11.02 12:3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9. 그래도 여행기간 내내 뉴요커가 되신 기분은 좋으셨겠어요 LA바닷가 천연 수족관 사진이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2010.11.02 12:5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그 사진은 있습니다~! 일전에 포스팅 했었어요 ㅎㅎhttp://supermata.tistory.com/69 여기에 있습니다.^^

      2010.11.02 13:47 신고 [ ADDR : EDIT/ DEL ]
  10. 카메라 렌즈가 독특한 사진이네요.^^
    이렇게 끄적끄적.. 기록했던 게 다 자산이지요.

    2010.11.02 13:3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1. 저에게는 많은 생각을 하게되는 글이네요.
    막연한 두려움에서 벗어나기까지 실행에 옮기기전까지는 불가능했을 그 상황이 너무나 와 닿네요.^^
    알고는 있었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한 삶의 지혜를 하나 배워갑니다~~

    2010.11.02 13:5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감사합니다. 글이 도움이 되었다니 기분이 좋습니다.
      앞으로도 소통할 수 있는 수필을 끄적여보겠습니다.^^

      2010.11.02 14:26 신고 [ ADDR : EDIT/ DEL ]
  12. 여행이 영어를 더욱 열심히 공부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군요~
    엘에이 천연수족관 사진은 지난번에 소개해 주셨던 그곳인가요?
    허벅님의 도전과 추진력이 부럽기만 하네요~^^*

    2010.11.02 15:2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3. 오~ 멋있군... ㅎㅎ

    2010.11.02 18:5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4. 많은걸 배우셨네요.
    역시 여행이나 외국을 나가면 느끼는게 많은데...ㅋ

    2010.11.03 09:2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5. 멋지십니다. 감동의 물결이...
    이래서 허벅다리님의 여행기에 남다른게 있나봅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2010.11.03 09:5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6. 숲 밖으로 나가야 숲을 볼 수 있다... 정말 명언이네요.
    저도 도전정신이 부족하여..ㅠ..ㅠ

    2010.11.03 15:2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7. 멋진 말입니다. 후니군도 크면 같은 경험을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드네요~ ^^;;

    2010.11.03 19:5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8. 전 열매에 욕심이 좀 있어가지고 ^^ ㅋㅋ 외국 여행 다니시는 분들 ,특히 혼자 다니시는 분들 보면 일단 부럽구요
    인생에 많은 도움이 되시리라 믿습니다

    2010.11.03 21:1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여행 중엔 항상 즐겁다 보니 인생은.. 저에겐 조금 거창하구 여러가지로 제 자신에게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2010.11.04 13:21 신고 [ ADDR : EDIT/ DEL ]
  19. 그렇게 여행을 시작하신거군요. 맞습니다. 밖으로 자꾸 나가봐야하죠. 저도 해외여행자유화가 시행되기전에 군에 있었는데, 89년 제대하자마자 바로 일본으로 배낭여행을 떠났네요. 그것이 더욱 큰 계기를 준것인지 이렇게 오랫동안 해외생활입니다. ㅎㅎ

    2010.11.04 22:0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인생의 선배님이십니다.^^*
      역시 선배님의 포스트엔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글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2010.11.06 02:05 신고 [ ADDR : EDIT/ DEL ]
  20. 허벅다리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어학 뿐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일에서도
    미리 겁먹을 필요없이 일단 부딪혀 보는 것이 지름길인 것 같습니다.
    특히 여행에서 가장 어려워 하는 언어문제도 자꾸 부딪히다 보면 말문도 트일 것 같구요.
    사실 그렇긴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당장 부딪힐 수 있는 용기부터가...^^;;;

    2010.11.05 19:4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행동'이 포인트 같습니다. ^^
      말은 쉬워보이는데, 행동하기가 어찌나 어려운지 말이죠. : )

      2010.11.06 02:06 신고 [ ADDR : EDIT/ DEL ]
  21. 저도 어학연수겸 온 캐나다에서 내일 시카고로 여행을가요. 그리고 한달뒤엔 한국에 돌아가는데, 분명 제가 예전에 느꼈던 것과 많이 다르겠죠. 허벅다리님 글보고 이런저런 생각이 또 드네요. 그리고 꼭 글이던 사진이던 남겨야 한다는 확신도 듭니다. 하하. 예전글이지만 공감이 가서 댓글달아요. ㅎㅎ.

    2012.09.03 02:3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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